디노미네이션만 단행하면 고액권ㆍ위폐방지 모두 해결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화폐 선진화 조치 여부를 연내 결정하겠다고 밝혀 향후 이 계획이 어떤 모습으로 가시화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단 박 총재는 비용과 시간 절감을 위해 △고액권 발행 △위폐 방지 및 도안 혁신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ㆍ화폐단위 하향조정) 등 세가지를 동시에 추진해 새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박 총재는 "총선 이후 정부와 협의를 통해 세 가지 화폐 선진화방안을 모두 한 꺼번에 추진할지, 아니면 한 가지씩 떼어서 시행할지, 아예 아무것도 하지 말 아야 할지 등을 연내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디노미네이션이 단행된다면 나머지 두 가지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 기 때문에 새 화폐 비용 측면만 고려한다면 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하는 것이 가 장 타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디노미네이션을 섣불리 추진할 수 없는 이유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아직 널리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 화폐 발행은 일반 국민의 경제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우선적으 로 국민여론조사를 거쳐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현재로선 국민적 공감대가 널리 형성된 10만원권 등 고액권 발행이 가장 가능성 높은 화폐 선진화 조치로 관측된다.

실제로 한은이 최근 금융기관 이용 고객 5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발행ㆍ 취급ㆍ사용에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드는 10만원권 자기앞수표의 문제점을 해소 하기 위한 방안으로 고액권 화폐를 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체 응답자의 63. 9%에 달했다.

또 고액권을 발행한다면 적정 최고 액면은 10만원권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56 .6%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5만원권(38.9%) △20만원권(2.0%) △50만원 권(1.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한은 관계자는 "현재 10만원권 등 고액권이 필요하다는 국민여론은 높은 반면 디노미네이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이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게 현실"이라며 "4월 총선 이후 고액권 발행 문제를 디노 미네이션과 연계해 정부와 구체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는 고액권 발행과 위폐방지를 총선 이후 선결과제로 추진 하고, 디노미네이션은 경제ㆍ사회적인 파장효과를 분석한 뒤 중장기 과제로 분 리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한은 등 실무 당국과 화폐개혁을 지속적으로 논의해왔기 때 문에 고액권 발행과 위폐 방지개혁은 총선 직후 즉시 착수할 수 있다"고 말했 다.

재경부는 특히 고액권 발행과 위폐방지를 연계해 단일 과제로 추진하면 대국민 설득에도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그러나 "디노미네이션은 사회적 불안심리 확산, 부동산투기 재점화, 화폐주조비용증가 등 부작용에 대해 좀더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일련의 화폐 개혁을 동시 다발적으로 추진할 경우 국민들이 심리적인 혼란상 태에 빠지고 금융시장이 동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어렵고 복잡한 디노미네이션보다는 상대적으로 도입하기 수월한 고액권 발행을 위폐방지 및 도안 혁신과 연계해 추진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는 얘기 다.

그러나 만약 고액권을 우선적으로 발행하고 디노미네이션을 나중에 추진한다면 `이중비용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어 이러한 비용문제가 화폐 선진화 조치 결정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디노미네이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이를 언제까 지 미룰 수는 없는 과제로 지적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60년 이후 전세계 38개국이 디노미네이션을 단행했기 때문 에 대미 환율이 1000단위를 넘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인도네시아 터키 베네 수엘라 등 일부 후진국에 불과한 실정이다.

박승 총재는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앞으로 수년 안에 `경` 단위를 써야 할 상 황"이라며 "세계에서 `경` 단위 쓰는 나라는 터키 한 곳밖에 없는데 터키도 내 년에 100만분의 1로 디노미네이션을 한다"며 디노미네이션 도입의 시급성을 역 설했다.

한편 한국이 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다면 절하비율이 1000대 1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한은 관계자는 "현재 주요국의 달러화 대비 자국 통화 환율을 보면 한자리 숫자대(예를 들어 1대 1)가 가장 많고 일부만 두자리, 세 자리 숫자대에 불과하다"고 밝혀 이 같은 1000대 1 절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채수환 기자 / 장용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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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talFu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