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는 박탈을 수행한다.


미래, 
즉 선택과 가능성의 담지자로서의 
시간을 박탈한다.


'노력'과 '보상'이라는 
노동 이데올로기는
(빚을 갚겠다는) 약속과
(돈을 빌렸다는) 죄의식에 의해 
두배로 강화된다.


부채에서 비롯된 권력은 
별다른 억압 없이도 작동한다.


채무자는 형식상 '자유롭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서명한
채무계약서의 규정대로 빚을 갚기 위해
스스로 행동과 선택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채무자는 '계약 이행을 가능케 해주는'
삶의 방식 속에서만 자유롭다.


시간과 빚의 관계, 
즉 돈을 빌려준 사람에 의한 시간의 탈취는 
아래와 같은 명언에 잘 표현되어 있다.


'고리대금업자는 기묘한 상품을 판매한다. 
이들이 빌려주는 것은 돈이지만
받아내는 것은 돈에 대한 기다림, 즉 시간이다.'


현재의 빚에 저당잡힌 시간.
부채는 새로운 가능성을 창소하는 
자신만의 시간을 무력화한다.


3천만원의 빚을 갚기 위해서 누군가가 
'선택과 가능성의 담지자로서의 시간'을 
박탈당한채 2년이란 시간을 보냈다면,


그 2년이란 기간동안 채무자는 철저히
노동자형 인간이 된다. 자본을 가진 측에서 
좋아하는 말 잘 듣는 노동자형 인간이 되는 것이다.
별다른 억압 없이도 이 시스템은 작동한다.
이것은 철드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 지는 것이다.


빚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땐
'빚을 갚기 위해' 보낸 그 2년이란 시간은  
아무 의미없는 시간이다.


빚이라는 달콤한 악마와 친해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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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talFu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