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사태 땐 4위였던 원화변동성, 올해 20개국 중 14위로
개선된 경제 기초체력 - "한국 재정건전성 우수" 국가 신용등급 상향 조정, 외화 꾸준히 유입… 환율 안정
외환시장 안정 대책 효과 -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과도한 외화차입 제한, 단기외채 비중 크게 줄어

 정대선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지난해 유럽에서 촉발된 글로벌 재정위기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거렸지만, 한국 외환시장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심리를 키우는 여러 사건이 터질 때마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락하며 외환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는 우리 경제가 그만큼 견실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2008년 리먼사태, 2010년 남유럽 재정위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환율변동폭 적어

먼저 과거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했던 기간 중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을 비교해보자.

첫 번째로, 2008년 글로벌 금융시장에 거대한 파장을 몰고 온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원화 가치는 한 달 사이에 달러당 1089원에서 1207원으로 급락하며 달러화 대비 7.8% 절하(원화가치 하락)됐다. 이는 주요 20개 통화와 비교해서도 브라질 헤알화 다음으로 큰 폭으로,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미국이었음에도 원화 가치가 유독 크게 요동쳤다.

두 번째로, 피그스(PIIGS·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로 불린 국가들의 재정위기 우려가 부각된 2010년 5월 원·달러 환율은 한 달 새 94원이 오르며 20개 통화 중 호주 달러화 다음으로 큰 절하율을 기록했다. 이번에도 한국은 재정위기의 당사자가 아니었음에도 외환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의 위기인 2011년 9월을 살펴보자. 당시 이탈리아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며 유럽 재정위기 우려가 다시 고조되며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쳤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은 다른 통화에 비해 중간 정도로 상승하는 데 그쳤다.

절하 폭뿐만 아니라 변동성으로 본 원화의 움직임에서도 최근 들어 빠르게 안정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주요 20개 통화 가운데 4번째로 변동성이 컸던 원화는 2009년에는 3번째, 2010년에는 2번째로 순위가 상승했다. 이후 2011년에는 10위로 중간 수준을 기록하더니 2012년 들어서는 20개 통화 중에 변동성이 14번째에 그쳤다.

이는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좋아졌고, 정부의 외환시장 안정조치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경제의 펀더멘털 크게 개선

지난해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강등되는 가운데 신용평가사 피치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으로 상향조정했다. 재정건전성과 대외 경제 여건이 우수하다는 게 상향조정의 근거로 제시됐다. 한국의 펀더멘털이 상대적으로 양호했기 때문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외화가 꾸준히 유입됐고, 원·달러 환율은 안정되게 움직였다.

주요 지표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경상수지의 경우 2008년 GDP 대비 0.3%에서 2009년 3.9%, 2010년과 2011년에는 2.8%와 1.5%로 안정된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실물거래에서 외화 공급이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로, 외환시장 안정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주요국의 양적 완화로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해진 가운데 선진국에 비해 양호한 재정상황 등 건전한 펀더멘털이 부각되며 외국인 자금이 안정되게 유입됐다. 특히 외국인 채권투자 자금은 작년 한 해 동안에만 230억달러가 유입되었다.

그 결과 외환에서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을 하는 외환보유액은 2008년 8월 말 2432억달러에서 2012년 2월 말에는 3158억달러로 726억달러가 늘었다. 이는 한국과 같이 태환성(convertibility·다른 통화와의 교환 가능성)이 크지 않은 통화를 사용하면서 외환위기 경험국이라는 낙인효과(stigma effect)가 있는 국가에 특히 중요한 점으로, 대외 신뢰도를 크게 높여 외환시장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외환건전성 부담금 도입 등 거시건전성 제고 조치도 효과적

우리나라 정부는 과거 수차례의 위기를 경험한 이후 금융시장 불안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거시건전성 제고 장치를 마련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선물환 포지션(자기자본에서 차지하는 선물환 비율) 규제와 외환건전성 부담금이다.

선물환 포지션 규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단기외채, 특히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단기외채가 한국 금융시장 불안에 큰 원인이었던 경험을 교훈 삼아 도입된 제도이다. 이는 금융회사의 선물환 포지션을 자기자본 대비 일정 비율 이하로 유지하도록 하는 것으로, 금융회사 특히 외은지점의 과도한 외화차입 영업행위를 제한하는 효과가 있다.

외환건전성 부담금은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더라도 외화를 안정되게 조달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작년 8월부터 시행된 외환건전성 부담금은 은행의 비(非)예금성 외화부채에 대해 만기별로 다른 요율을 부과하는 것으로, 단기 외화조달 비용을 상대적으로 크게 해서 외화부채의 만기를 장기화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선물환 포지션 규제와 외환건전성 부담금 제도가 시행된 이후 외채 구조가 크게 개선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던 2008년 3분기 말 외은지점의 단기외채 비중은 96.4%에 달했으나, 작년 말에는 66.5%로 대폭 축소됐고, 은행 전체로는 그 비중이 72.6%에서 51.8%로 떨어졌다.

또한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해져 외화유동성 사정이 급격히 악화될 경우에 대비해 주요국과의 통화스와프(통화 맞교환)를 늘린 것도 원·달러 환율 안정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10월 일본과 700억달러 상당, 중국과는 560억달러 상당의 통화스와프를 각각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Posted by FatalFu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