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그래서 대체 애프터 신청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국민 참여형 경선, 아니 데이트 데이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도 데이트잖아

뭔가를 적어야겠지만, 뭔가를 적어야 할까요? 데이트 신청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나, 서로 짤막한 교감을 나눌 때 안 했으면 좋겠다 싶다는 점까지 말씀드렸으니 말이에요. 두번째 데이트라고 해서, 첫번째 데이트와 다를 것 없죠. 깨끗히 씻고, 깔끔하게 입고, 좋은데 갈만한 곳을 미리 결정해두세요. 다만, 두번째 데이트가 첫번째 데이트보다 나은 점이 있지요.

그건 서로 의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춘 연애물의 전설적인 교범 <H2> 에 보면 비 오는 날 까페에서 하루종일 기다린 하루까가 약속 시간에 착오가 생겨 늦게 도착한 히로에게 말한다. "기다리는 시간도 데이트잖아"

…감히 그 길이 남을 명대사를 빌어보자면, '데이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도 데이트잖아'

'<스피드 레이서> 보셨어요? 비가 그렇게 멋있게 나온다면서요. 비 좋아하세요? 저는 노력하는 모습을 좋아하는데, 이번에 잘했다고 하니까 왠지 보고 싶어지는데, 어떠세요? 괜찮으신 날 말씀해주시면 제가 예매할께요.'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무난한 데이트 신청법이라고 말했던 것인데, 한번 더 만나보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던만큼 우리에게도 상대를 좀 더 탐색해볼 시간이 필요하니 무난한 데이트도 필요하지만, 그녀가 무진장 마음에 들었을 경우도 있을거고, 그럴 경우는 한층 더 심화된 버전이 필요하다

첫날의 대화와, 간간히 오간 전화 통화 등으로 이미 그녀의 취향과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파악은 어느 정도 되어 있는 상태라고 한다면,

다음 데이트 계획에 대한 조언을 바로 그녀에게 구해보는 것도 좋다.

물론 그 조언을 구하는 방식은 ', 만나서 모할까? 미치게써. 생각이 안 나ㅠ.' 이런게 되면 전혀 안 되겠다. 다만, 조언을 구하는 형식을 취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우리 나름대로 살펴보고 결정한 메인 데이트 코스 후보가 두셋 쯤 있어야만 한다. 

이를테면 그녀가 뮤지컬에 관심이 많았다는걸 알고 있다고 해보자. 그럼 이런 식이다. '아까 네이버에서 기사를 봤는데 괜찮은 창작 뮤지컬들이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인지도를 높히려고 가격을 많이 할인한대요.' 로 말을 꺼내보자. 뮤지컬에 별로 관심이 없다면 모를까, 평소에 흥미가 있었던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반응이 있을거고, 그 반응에 맞춰서 그럼 '우리 이번엔 뮤지컬 한번 보러 갈까요? 저도 뮤지컬 본지가 참 오래 되어서…이런 식으로 데이트 코스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모든 계획을 세우고, 그녀를 모시는 데이트에서 그녀에게 하나하나 허락을 구하거나, 의논하는 식으로 데이트 약속을 잡는 것의 장점은 우선 아직은 뻘쭘한 전화 통화를, 대화 소재 걱정 안 하고 당당하게 오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데이트 계획에 그녀도 깊이 관여하게 함으로써 그녀가 데이트에 대해 좀 더 몰입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이트에 대해 '그래, 너 어쩌나 두고보자'  방관형 자세일 수 있는 그녀에게 소극적으로라도 어떤 의견을 내게 만듬으로써 데이트에 보다 적극적인 포지션을 강제로 할당하는 것이다. 그 효과는 데이트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을 상승시킨다. 그럼으로써 그 효과는 다시 '당신' 자체에 대한 호감도 상승으로는 이어지지 않아도, 당신과의 '관계' 에 대한 호감도 상승으로 이어진다.


 
③ 먹을 것으로 유혹하라

그녀가 동물이어서 먹을 것으로 조련하라; 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먹을 것에 약하다. 먹을 것으로 상대를 유혹하는건, 언제나 유효한 전략이며, 심지어 데이트 신청의 어색한 긴장감을 완화시켜줄 뿐만 아니라 거절당했을 때의 창피조차 감소시킨다. 먹을 것은 위대하다!().


너무 늦은 시간은 곤란하겠지만, 무난한 밤 10시 대 정도의 시간대에 전화 통화를 나누면서, 은근슬쩍 물어보자. "지난번에 왜, 냉면 좋아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전 아무래도 냉면의 최고봉은 필동면옥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떠세요? , 필동면옥을 가본 적이 없으세요? 으아. 거기 정말 장난 아닌데. 육수가 얼마나 진하다고요. 게다가 만두도 맛있는데! 안되겠다. 어떠세요? 꼭 같이 한번 가야겠네요. 저도 오랜만이라 너무 땡겨요' (…제가 냉빠; 인지라 지금 냉면이 너무 먹고 싶어서 예를 냉면으로 들었을 뿐입니다-_-)

먹을걸로 유혹하는건 굳이 빨간걸 먹지 않아도, 언제나 성공 확률이 세배 높다


 
④ 데이트의 실제

수많은 연애서에 보면 두번째 데이트 때는 첫번째 데이트 때와는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해보라고 조언한다. 옷차림이라던가, 색다른 데이트 코스의 개발이라던가, 헤어 스타일을 변화시킨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모두 그다지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명심할게 있다. 첫번째 데이트 때는 신뢰감을 주는데 주력해야 하며, 두번째 데이트 때는 편안한 느낌을 주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 데이트까지 하나하나 챙겨줄 수는 없는 일이고, 첫번째 데이트라고 해서 내가 밥숟갈까지 떠넣어준건 아니었으니 알아서 재미있는 데이트를 잘 추진, 그리고 진행하셨으면 좋겠다. 두번째 데이트라고 해서 지금까지 내가 했던 여러 조언들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만 명심하시면 된다.

몇마디 덧붙일 조언이 있다.

말을 놓자는 제안은 신중히 결정하시라. 둘다 모두 나이가 어린 대학생이라면 말을 놓는 것이 좋을 수 있다. 그러나 둘다 직장인이라면, 아직 이른 결정일 수도 있다. 만약 우리의 나이가 더 많다면, 말을 놓자는 제안은 곧 그녀에게 우리를 '오빠'라고 부르라는 뜻이 된다. 전에도 잠시 말한 바 있지만, '호칭'은 권력을 함의한다. 우리가 더 나이가 많은데 말을 놓자는 이야기는 '너 내 밑으로 들어와라' 라는 뜻일 수도 있다

스킨쉽은 아직 때가 아니다. 나도 연애 관련 서적 같은걸 좋아해서, 적지 않은 연애 관련 서적을 읽어보았는데 그것들에서는 '친근감을 부르는 스킨쉽' 이런 비슷한 식으로 두번째 데이트부터 가벼운 터치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손이 예쁘다며 손을 터치한다거나, 얼굴에 뭐가 묻었다며 털어준다거나, 신호등이 깜빡일 때 빨리 건너자며 손을 잡으라거나 하는 충고들이 그것이다(이런 구체적인 조언을 읽을 때마다 너무 간지럽고웃기는게 너무 재미있다-_-;) 

나도 여러번 실수하면서 알았고, 또 그러면서도 아직까지도 많이 실수하는 부분이라서 난 아닌 척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남자에게는 스킨쉽이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알면서도 잘 안 되는 부분이라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이야기하면 스킨쉽은 굉장히 보수적으로 행하는게 뒷탈이 없다. '이제 슬슬?' 이라고 생각하셨다면, 두번째 데이트도 아직 이르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선물은 두번째 데이트, 세번째 데이트로 갈수록 조금씩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다만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아야 하는데, 미리 포장해서 준비하는 선물은 효과도 미심쩍지만 부담스럽기 쉽다. 이전에 이 글에 달린 덧글에서 어느 분이 주신 이야기인데, 이왕 종로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면 교보문고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는 것도 좋다(선물 주려고 일부러 교보문고에서 만날 필요는 없고-_-;). 교보문고에서 만났다면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음악인데 한번 들어보셨으면 좋겠다고, 조금 일찍 도착해서 둘러보다가 눈에 띄어서 생각나서 샀다고. 좋았으면 좋겠다고. 꼭 들어보고 감상문 제출해달라'고 웃으면서 CD 를 선물해 주는 식? 책이라도 좋다다만 이럴 때 주의해야 할 점은 교보문고 자체를 데이트 장소로 삼을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그녀가 문구류나 핫트랙 등을 구경하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다른 물건들에 홀려서 그녀에 대한 집중력을 잃어버리지 않게 주의하자.





19. 애프터에서 고백까지


 ① 전화 먼저 끊지 마세요

첫 데이트가 끝나고, 두번째 데이트하는 사이- 혹은 두번째 데이트 이후에도 그렇다. 슬슬 전화 통화를 하게끔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문자를 주고 받게끔 되었을 것이다. 이 정도 친밀도의 예비 커플이 전화 통화를 그리 길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전화요금 부담에 대한 부분은 그냥 넘어가겠지만중요한 점은 집에 데려다주는 것 뿐만이 아니라 문자도, 그리고전화도 배웅하는 입장이라는게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되는게 낫다. 

더 자세한 것은 
전화 먼저 끊지 마세요 를 참조해주시길.

참고로 우유부단하게 전화 끊을 타이밍 못 찾아서 할 말도 없는데, 어색하게 계속 전화 수화기를 붙들고 있거나 무의미한 문자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으라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② 언사를 주의하세요

그녀도 우리를 어느 정도 마음에 들어한다는 기분이 들면, 우리는 마음이 풀어져서 급편하게 그녀를 대하게 되기 일쑤이다. 나도 이런 실수를 많이 하고, 또 했는데 주의하고 또 주의해도 모자람이 없어서 언급한다. 성적인 농담 같은건 이미 말한 바 있으니 넘어가고, 상하가 분명치 않은데도 긴장감 있는 대인관계와 대화에 능숙하지 못한 우리들은 종종 놀리거나, 짖궂은 장난으로 긴장을 풀어 버리려 하는 경향이 있다. 웬만한 여자라면 웃고 넘어가겠지만, 친숙하지 못한 사이라면 '날 너무 무시하는거 아닌가?' 하는 기분이 남자가 경험상 안전하다고 믿는 수위보다 조금 더 빨리 온다는걸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언사도 부주의하게 내뱉기 쉽다. 이를테면 (정말 바빠서!) 약속을 자꾸 미루는 그녀에게 우리는 우스갯소리랍시고 ', 왜 그리 비싸게 굴어요?', '저 너무 심심해요. 놀아주세요' 혹은 '내일 저 할 일도 없는데 만날까요?' 이런 언사는 그동안 힘들게 쌓아온 좋은 이미지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한방이다



 
③ 약속은 반드시 지켜주세요

지난번 글에 많이 달린 덧글의 내용 중 하나가 '전화할께요' 해놓고, 전화하지 않는 남자의 이야기였다. 물론 그건 애프터와 관련된 이야기니 약간은 핀트가 다르긴 한데, 어쨌든 입밖에 꺼낸 말을 지키지 않았다는 차원에서는 같은 문제다. 남녀관계에서 이 정도 얕은 단계에서 약속을 지켜야 하는건 대개 언제 연락하겠다거나, 언제 보자는 정도일 것이다. 설마 '내가 나중에 버킨을 사줄께' 이런 약속을 하진 않았을테니까.

이 단계에서 약속은 기본적인 신뢰에 대한 문제고,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신뢰감은 소개로 만나는 남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본의 아니게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면 반드시 사전에 알리고, 이유를 충분히 설명한 후 사과해야 한다. 약속이 오늘 오후인데, 오전에 전화해서 못 나간다고 하거나, 전화라면 또 몰라. 문자 하나 달랑 보내서 '미안해요. 못 나갈 것 같아요' 이러면 곤란하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면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보상하는게 좋다. 이를테면 그녀가 차를 사려고 할 때, '지난번에 약속 못 지킨 것도 미안하니까 이번엔 제가 낼께요' 이런 식으로 보상이 이루어진다면 보상 그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나중까지도 그 약속 어김을 신경 쓰고 있다는 증거가 되니 호감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벌써 고백하실건가요?

그녀들이 남자라는 종족에 대해 잘 납득하지 못하거나, 경계하는 부분이 있다면 굉장히 빨리 반하고, 고백해온다는 것이다. 심지어 첫눈에 반한다는 것을 믿는 여자라도 아직 충분히 거리감을 좁히지 못했다고 생각한 남자가 갑자기 고백해오면 경계심을 품는다. 그 정체를 폄하해도 좋고, 나는 거기에 대해 별로 평가할 생각은 없지만, 남자는 여자보다 훨씬 더 급반할 수 있고, 급고백하는 사람들도 많은게 사실이다. 아마도 감정을 담는 그릇의 크기 자체가 작은게 아닐까 싶은 추상적인 생각도 가끔 해보기는 하는데… 그야 어쨌든,

고백은 중요하다. 하지만 소개팅으로 만나 두번, 세번 밖에 만나지 않았는데, '좋아합니다.' 라는 고백은 첫눈에 반한다는 것을 믿는 여자라도 미심쩍게 느낄 것이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을 나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첫눈에 반한건 자신의 감정이지, 그걸 풀어내는걸 한방에 해야 한다는건 아니다. 고백이라는건 다 나름의 절차와 과정이 있다. (작업의 정석 참조)

하지만 어쨌든 고백의 시간은 필요하다. 두번째 데이트까지 마쳤으면 진퇴를 결정할 때가 온 것이다나를 포함한 숫기없는 우리들은 이런 타이밍을 알아서 눈치채주겠거니, 하는 바람을 가지고 슬쩍 뭉갤 때가 많다분위기 좋을 때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겠지만마음에 안 들면 연락을 뜸하게 하거나, 혹은 피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그건 옳지 않다. 또한 여자 쪽에게 꽤 감정적 부담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어떤 고백이 필요하냐면, 어떤 거창한 고백을 하라는게 아니다. '나는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고, 잘 만나보고 싶다.'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관계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혹은 어떻게 흘러갔으면 하는가 하는 자신의 감정을 그녀에게 명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 오해가 있을까봐 미리 말해두는데, 이건 '나랑 교제해달라' 고 구애한 후 가부 결정을 기다리는 것과는 다른 고백이다. 그녀가 바로 그순간 선택하게끔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그저 당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계속해서 친근감을 쌓아가며 조금씩 조금씩 접근하면 된다. 그녀가 입장을 정리할 수 있게끔 당당히 당신의 입장을 밝히고 반응을 보일 시간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 입장을 전달하라는 것이냐, 는 의문이 나올 수도 있다그런 것까지 일반론으로 조언하기는 어렵다. 우리 중의 당신의 성격이 단도직입적인 것을 선호할 수도 있고, 혹시 그녀가 그럴 수도 있다. 당신은 숫기가 없는 성격이고, 그녀도 단도직입적인 것을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다

다만 너무 신중한 것은 좋지 않다. 과감할 필요도 있다. 물론 너무 성급한 진행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소개팅은 연애를 전제로 한 만남이다. 어휘를 신중하게 고르고, 다소 부드러운 말투와 분위기를 이용해 '당신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잘 만나보고 싶습니다' 라고 분명하게 입장을 전달하는게 좋겠다. 그리고 수많은 변수가 있으니, 경우에 따라 생략하고 바로 아래의 과정으로 급진행될 수도, 혹은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시길.


⑤ 프로포즈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프로포즈'라고 해서 청혼은 아니고; 위에서 '고백' 이라는 말을 이미 써서 차별화하고 싶어서 썼는데, '교제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가부 결정을 요청하는 행위, 를 말한다. 결국 구체적인 구애를 말하는데,

내가 소개팅을 직접 주선하면서 보았고, 주변에서 몇번 지켜보았던 경우인데 의외로 남자의(혹은 여자의) 구체적인 구애 없이도 교제를 하게 된 연인들이 있더란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만큼 어느 한쪽의 불만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교제가 이뤄지는건 참 좋은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감정 표현이 다른 연인들보다 부족하기 쉽고, 그런 점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그 중 많은 퍼센테이지가 남자의 쑥스러움에서 비롯된다는걸 직접 목격하였다. '우리 사귀는거 아니었어? 꼭 말로 해야 아나?', '그런건 그냥 좀 알아채주면 안돼?', '생각해봐. 좋으니까 자꾸 만나고, 돈쓰지.', '. 착하면 척이지. 너도 나한테 사귀자고 한적 없잖아'. 꽤나 흔히 들을 수 있는 변명이랄까, 항변이랄까, 그럴거라 생각하는데…

쑥스러움은 이해한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구애를 하지 않는다는건 조금 낯뜨겁거나 스스로가 약자가 되는 순간을 모면하겠다는 이기적인 기분일 따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정식으로 교제를 요청하는 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여자는 종종 확신을 필요로 하며, 확신을 주는 것은 연애 관계에 있어서 기본적인 책무이다. 물론 남자도 불안해 하기 일쑤이며, 확신을 느끼고 싶어한다그러나 그러한 구애의 절차를 생략하는 것도, 그리고 거기에 대한 불만의 대상이 되는 것도 거의 백퍼센트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남자라는건 아주 재미있다. 현실적으로 구애를 하는 입장이 되는 경우가 많은게 남자이기 때문일까? 우리는 그녀들이 갖는(혹은 가져야 한다고 말해지는여자답다거나 전통적으로 여성적이라는 미덕들이 학습효과에 불과한지 확신하지 못한다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남자답다고 말해지는 전통적인 남성성들 역시 학습 효과에 불과한 것일까? 남성적인 매력 아래 가려진 거절당하는데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이라는 것을 구애의 순간만큼은 강자인 그녀들이 보다 너그럽게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적인 몇가지 필요에 의해서라도 스스로의 제안과 상대의 동의라는 정식적인 절차를 걸쳐 첫 발자국을 떼는 것이 필요하다.

그 중 하나는 때로는 구애의 언어와 이러한 절차들이 감정에 구체성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감정은 무정형이라 아무리 되새김질해봐도 일백퍼센트의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다. 표현하지 않은 감정은 미완성이라고 했던가(…미안, 내가 한 말이다-_-;). 표현하지 않은 우직한 남자의 순정(경상도 남자?) 이라는 이미지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런 이미지를 별로 신뢰하진 않는다. 보통 그러한 남자의 순정이라는 것들이 이상하게 말로는 표현하지 않는데도, 스킨쉽이라는 증거는 남기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어쨌건 이미 만들어진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드러낸다, 는 식의 사고도 가능하지만 표현하면서 감정을 만들어나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무정형의 감정을 표현이라는 틀에 담음으로써 예쁜 모양을 만들어나간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임감의 근원이 된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감이다. 관계의 유지 및 보수는 책임감이 맡아서 공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관계를 형성하는 주춧돌은 언어다백번 양보해서 언어 없는 감정은 있을 수 있다해도언어 없는 관계는 있을 수 없다언어는 관계를 형성하며, 관계를 유지하고, 관계를 보수한다. 그리고 이 언어로 이루어지는 정의, 지시, 지칭이라는 것들이 책임감을 낳는다. 약속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입밖에 내어놓은 언어로 인한 구속이다. '오늘부터 우리는 부부' 라는 성혼 성사문처럼 '오늘부터 우리는 연인' 이라는 구체적인 지시는 세상에 대한, 상대에 대한,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 된다스스로에 대한 약속을 깨는 것 자체는 어느 누구도 탓하지 않을 수 있다 하더라도스스로도 스스로를 전혀 탓하지 않을 수는 없다그것이 죄책감이다

사랑은 연애 관계의 필요 조건이지만, 충분 조건은 아니다. 언제나 샤방샤방핑크사랑밖에난몰라어머우리자기완전짱이야 이런 감정이 관계의 전부가 될 수 있다면 옆의 친구들이 몇번 토하는 부작용이 있을 뿐, (적어도 그 연인의 프레임 안에서) 세상이 언제나 아름다울 수 있겠지만, 사랑은 관계를 이루는 하나의 축에 불과하다. 다른 축은 관성, 두려움, 안락함, 죄책감 등등의 여러가지 감정이 있겠지만무엇보다도 책임감이다사랑이 아닌, 책임감이 중요한 축이 되는 관계에 대해 심정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적지 않으리라 보는데 혼인 서약 성혼 성사문이 아름다운만큼 연인들의 책임감도 아름다운 감정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뭐, 기념일 챙길 때도 필요하고. (음… 생각보다 이거 중요합;)

Posted by FatalFury